E.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고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평면회화 ‘김태협’ 작가입니다.
E. 어떻게 현재의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어떤 작업들을 이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미국에 사는 친척 형이 있었는데, 한국에 올 때마다 크레용을 선물로 주었었죠. 그 때 제 손에 든 크레용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큰 흥미를 느꼈어요. 특히 무언가를 따라 그리는 걸 특히 좋아했었어요.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갔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수능 이후 화학 전공을 선택 하게 되었어요.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과학 분야에 관심도 있었거든요. 1년은 신입생으로 마냥 대학 생활을 즐겼어요. 고등학생 과정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졌었어요. 하지만 2학년 이후부터는 심화과정이 되다보니 적응에 어려움이 생기더군요. 제 길이 맞는 지 의문이 들면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었죠. 부모님께 잘 설득하여 자퇴를 했고, 그렇게 반수를 시작해서 미술 대학 진학을 준비했어요. 처음 보았던 시험에서는 불합격 통지가 있었는데, 이후 운이 좋게 서양화 전공으로 입학할 수 있었어요. 다행히 잘 적응했고, 작가를 꿈꾸면서 대학원 과정도 마쳤네요. 그리고 열심히 저만의 방법으로 활동을 이어갔죠. 학부 시절에는 오일에 포커스가 있었어요. 오일 파스텔 이라고 하는 재료로 작업을 하는 거죠. 결과물로는 007 영화의 배우나 엘비스프레슬리 같은 유명한 인물에 제 얼굴을 넣어 완성하는 작업을 주로 했었어요. 저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자 했던 충동으로부터 작업의 방향이 구축되었던 것 같아요. 점차 그러한 작업들이 발전해서 현재의 작업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 같네요.
E. 작가로 일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어려움은 늘 많죠. 어려움이 없는 작가는 없겠죠. (웃음) 일단은 창작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고민도 많이 해야 하죠. 예상 밖의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일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부분도 어렵죠. 작품 판매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아요. 오로지 작품만 하면서 생계를 산다는 건 미술이 발전한 요즘에도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봐요. 저도 작품 활동 이외에 촬영 일도 하고요, 편집도 해요. 그리고 발달장애 친구들이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서포트 하는 역할도 해요, 교육 프로그램 보조 강사도 참여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개인 작업으로의 어려움 이야기는 요즘 어느 정도 해소가 된 어려움이긴 한데요. 테블릿 피씨가 등장하기 전에는 파레트에 색을 하나하나 만들어보고 조합해서 작업을 진행했었어요. 어울리는 색이 무엇이 있는지를 연구하는 아날로그 시스템이죠. 하지만 요즈음에는 테블릿피씨가 있어서 보다 편하게 예상하는 색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어요. 작업의 특성상 프린트된 느낌으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컬러의 양을 조절하지 못하면 다시 색을 만드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죠. 또한 어디는 묽고, 어디는 진하게 되면 작품의 결과가 달라지니, 정교하게 작업하며 덧칠하는 일에 시간 소요가 많았죠. 요즈음에는 테블릿피씨로 미리 색을 입혀보고, 시뮬레이션 후에 계산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수월해요.
에디터 몽키 : 저는 작품 안에 색이 한정적이고 볼륨보다 일정한 톤으로 완성하는 방향이 오히려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작업으로 프린트 작업처럼 만든다는 것이 더 복잡하겠네요. 터치나 자국이 남아도 안 되고, 색도 일정해야 하니 말이에요.
E. 발달 장애 친구들이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일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토탈 미술관의 신보슬 큐레이터님과 개인적 친분이 있었어요. 복지관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제가 함께 하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셔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죠. 그렇게 복지관을 2년 정도 나갔던 것 같아요. 복지관에서 평범한 작업실 대표님이신 노세환 작가님과 함께 일했죠. 발달 장애 예비 작가들 중에서 두 명은 매주 수요일마다 평범한 작업실로 데려와서 그 친구들의 관심사를 관찰하고 작업으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고, 매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의 표현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는 등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배우는 건 오히려 제가 더 많아요. 생각의 폭이나 관점도 다르고요. 말하면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 친구들이 인터뷰 주제에 부합되는 순수함을 가진 친구들이 아닌가 싶네요. 그림을 그릴 때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면 정말 그림 그리는 자체를 100% 즐기고 있는 것 같고요. 한 친구는 작년에 개인전을 했었어요. ‘동물과 마주하다’ 라는 주제였죠. (@younghun1995) 정민우 작가도 2023년도 12월에 <미미식탁> 이라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minwoo0712_)
E.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는 지 궁금합니다.
우선 영상 매체를 자주 봐요. 만화나 영화는 특히 자주 보고요. 틈 날 때면 보고 떠오르는 색감이나 모영, 형태를 발견하는 일에 시간을 쏟고요. 제가 겪었던 것들이나 인상적인 것에 대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거나 기억하여 작품으로 가져오는 경우도 있고요.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영화를 특히 좋아했는데 그로부터 반영되는 부분도 많아요. 한번은 ‘다크 나이트’라는 영화의 조커라는 캐릭터가 인상 깊었어요. 그런 삶은 어떤 삶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저와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호기심으로부터 작업을 이어나가는 게 재미있죠. 또 다른 예로는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로부터도 비슷한 과정으로 결과물을 만들었고요. 그리고 평상시에 불특정 무언가에 대해 구경하고 관찰하는 일을 많이 해요.
E.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상하시는 작품과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의자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제 얼굴을 그리거나 어떠한 상황을 그렸었는데, 처음으로 사물을 그린 작품이에요. 사물을 그리고, 그 사물이 어떠한 시간을 보내왔을까 라는 질문이 흥미롭게 느껴졌죠. 그러면서 ‘다른 퍼포먼스나 무언가를 연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의자를 닦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고요. 또한 ‘환경이나 저의 개입으로 또 다르게 변화를 겪지 않을까’ 라는 호기심과 흥미도 컸어요. 작업 프로세싱 자체가 한 길로만 가던 저에게 다른 길을 가본 것 같은 신선함도 있고, 작업으로부터의 환기를 느끼는 것 같아서 기억에 오래 남아요. 이 과정에서 새롭게 구상하는 아이디어도 생기고 폭에 갇힐 염려도 줄일 수 있고요.
E. 작품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색감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구상하는 이미지들을 라인으로 들어온 후에 색을 넣는 순서로 작업해요. 늘 과하지 않은데 화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저의 MBTI가 ENFP라서 외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개인적 성향도 색에 반영을 주는 것 같아요. 1차적으로는 밝은 느낌을 뿜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도를 갖죠. 유독 그런 밝은 느낌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본능적 선택이자 개인적 충동의 솔직함인 것 같아요. ‘밝은 작품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자세히 작품을 보면 전혀 반대의 감정이 드러날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도 있죠.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듯 색을 통해 저에 대한 아이덴티티와 이야기, 암시나 플롯 등이 있어요. 두 번째로는 ‘눈(Eyes)’이에요. 제 작업에서 보통 눈이 크게 부각되어 나오는데, ‘눈(Eyes)’은 다른 촉각이나 미각, 후각에 비해 사람에게 가장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감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눈을 통해서 바라보는 사회 모습이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책임감처럼 매 작업마다 눈을 가장 먼저 그리는 순서를 갖죠. 눈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보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바라보았을 때 그 사람이나 시간을 나타내기도 해요.
E. 계획 중인 전시나 구상 중인 작품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이번년도(2023년)를 목표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개인전을 위해 여러 곳에 미팅도 다니고 작업도 준비 중이죠. 제 작품 중에 가장 큰 작품이 150호에요. 얼마 전에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작가의 작업을 보았는데 대형 작업으로부터 다가오는 에너지가 다르더라고요. 이번 작업에서는 대형작업을 도전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뭐 사실 올해 안에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작업들은 많아요. 그 중 하나로는 ‘퇴근 시리즈전’이에요. 작업 방식 중에 하나로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보여 지는 광경들을 찍고 있는데, 일정 시간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한국 내에서 움직여지는 퇴근의 얼굴들에서 인상적으로 느껴지거나 발견된 무언가를 사진으로 찍은 뒤에 색상이나 이미지를 삽입하여 완성하는 작업이죠. 그리고 또 다른 방향은 초상화 시리즈도 있고, 이모티콘 시리즈도 있어요. 구상하는 것들은 많죠.
* 무라카미 다카시(むらかみたかし) : 카이카이 키키 대표이사이자 미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일본화과 졸업 이후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거쳐 1993년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도쿄예술대학교 일본화과가 배출한 1호 박사이기도 하다. 일본 오타쿠 코드로 재조합하여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며, 그의 작품세계는 오타쿠 문화와 예술의 경계에 있다. 2021년에는 NFT 작업으로 카이카이키키 웃는 꽃이라는 작품을 NFT화 한 ‘무라카미.꽃’ 과 나이키 NFT로 알려진 NFT 기업 RTFKT와의 협업으로 만든 ‘클론X’가 그의 작품이다. 그 외로는 경매가 약 5천800만엔에 낙찰된 피규어 작품, 그만의 팝아트 작업,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등다양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자료 출처_ 나무위키)
E.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형 작품의 경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100호를 기준으로 하자면 빠르면 2주에서 보름 정도 걸리죠. 물론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하기 때문에 속도가 오래 걸리는 것도 있어요. 전시가 잡히면 밤샘작업은 기본이죠. 흑백 작업의 경우는 비교적 금방 해요.
E. 영향력 있는 인물이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재 상황에서 저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자면 노세환(평범한 작업실) 작가님과 신보슬(토탈 미술관) 큐레이터님이네요. 계속 소통하고 만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중이거든요.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작업에 대한 교류나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요. 그리고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죠. 생각하는 것들, 작업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해요. 작가 내부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시간도 물론 필요하지만 외부적으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생각도 이어져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이에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감상했었는데, 십자가 책형을 위한 습작 3점, 3면화를 좋아해요. 직업 특성상, 보여지는 재료의 특성이나 터치감도 보게 되요. 표면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설치는 어찌 되어 있는지, 그로 인해 뿜어져 나오는 깊이감은 무엇인지도 함께 관찰하죠. 그 작품을 30분 정도 가만히 본 것 같네요. 보는 내내 감탄을 했죠. 왠지 모르게 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죠. 어떤 생각을 하면 저렇게 표현이 될 수 있나 싶기도 하고요.
또 하나의 작품은 ‘요시토모 나라’라는 작가의 작품인데요. 그 분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제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생겨요.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장난스럽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서글픔도 느껴져요. 얼굴에서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도 있고요. 그 분의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도 보았는데 큰 감명을 받았어요. 학부 시절에는 그 분의 작업물을 따라 그리는 시도도 많이 했죠. 간단하게 그린 것 같지만 실은 상당한 정성이 있어야 그릴 수 있는 작품이에요.
*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 20세기 영국 화가로 추상 표현주의와 현대 미술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잔인하고 퇴폐적인 이미지, 심리적인 내면의 탐구, 인간의 존재의식 등을 다루며, 독특한 스타일과 상징적인 모티브로 알려져 있다. 190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가구 디자인과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화가로 전향하여 창작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고독과 불안, 죽음과 인간의 고통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강렬한 색채와 침투적인 묘사 기법을 특징으로 하며, 흐릿하고 왜곡된 인물들, 동물, 신체 부위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종종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탐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1992년 사망했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콜렉터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 요시모토 나라 (Yoshimoto Nara) : 일본의 현대 미술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독특한 스타일과 동심적인 소년 캐릭터로 알려져 있으며 전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1959년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작품은 주로 캔버스에 그려진 동화적이고 간결한 캐릭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종종 큰 머리와 작은 몸, 강조된 눈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요시모토 나라의 작품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소년기의 경험, 인간의 존재와 연결된 감정 등을 다룬다. 그의 캐릭터들은 순수하고 동심적인 면모를 담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비관적이거나 반항적인 표현을 보일 수 있다. 그는 자아, 정체성, 성장과 변화 등과 관련된 주제를 탐구하면서 그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감정적인 공감과 아이러니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요시모토 나라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세계 각지의 현대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자료 출처 지식백과)
E. 앞으로의 꿈이나 목표가 무엇일까요?
여건이 된다면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어요. 주변에 작업을 하다가 멈추게 되시는 분들이 많아요. 끝까지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하는데, 상황은 제 뜻대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작업을 이어가는 한, 제 생각을 좀 더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어요. 이 일이 저에겐 무척 재미있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작가도 연예인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자신만의 생각이나 작업을 보여주는 건데 한번 이슈가 되었다가 사라져도 안 되고,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운 부분이죠. 오랜 시간동안 재미있게 작업을 지속하고 싶어요. 공부도 더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도 맺어나가고 싶고요.
Instagram : @large.world_studio
해당 인터뷰는 BUTTON UP MAGAZINE 의 첫번째 주제인 '순수함' 에 대한 인터뷰 내용의 일부입니다.
태협 작가가 생각하는 '순수함'이 궁금하시다면 ISSUE 카테고리에서 확인해보세요.
E.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고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평면회화 ‘김태협’ 작가입니다.
E. 어떻게 현재의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어떤 작업들을 이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미국에 사는 친척 형이 있었는데, 한국에 올 때마다 크레용을 선물로 주었었죠. 그 때 제 손에 든 크레용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큰 흥미를 느꼈어요. 특히 무언가를 따라 그리는 걸 특히 좋아했었어요.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갔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수능 이후 화학 전공을 선택 하게 되었어요.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과학 분야에 관심도 있었거든요. 1년은 신입생으로 마냥 대학 생활을 즐겼어요. 고등학생 과정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졌었어요. 하지만 2학년 이후부터는 심화과정이 되다보니 적응에 어려움이 생기더군요. 제 길이 맞는 지 의문이 들면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었죠. 부모님께 잘 설득하여 자퇴를 했고, 그렇게 반수를 시작해서 미술 대학 진학을 준비했어요. 처음 보았던 시험에서는 불합격 통지가 있었는데, 이후 운이 좋게 서양화 전공으로 입학할 수 있었어요. 다행히 잘 적응했고, 작가를 꿈꾸면서 대학원 과정도 마쳤네요. 그리고 열심히 저만의 방법으로 활동을 이어갔죠. 학부 시절에는 오일에 포커스가 있었어요. 오일 파스텔 이라고 하는 재료로 작업을 하는 거죠. 결과물로는 007 영화의 배우나 엘비스프레슬리 같은 유명한 인물에 제 얼굴을 넣어 완성하는 작업을 주로 했었어요. 저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자 했던 충동으로부터 작업의 방향이 구축되었던 것 같아요. 점차 그러한 작업들이 발전해서 현재의 작업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 같네요.
E. 작가로 일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어려움은 늘 많죠. 어려움이 없는 작가는 없겠죠. (웃음) 일단은 창작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고민도 많이 해야 하죠. 예상 밖의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일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부분도 어렵죠. 작품 판매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아요. 오로지 작품만 하면서 생계를 산다는 건 미술이 발전한 요즘에도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봐요. 저도 작품 활동 이외에 촬영 일도 하고요, 편집도 해요. 그리고 발달장애 친구들이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서포트 하는 역할도 해요, 교육 프로그램 보조 강사도 참여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개인 작업으로의 어려움 이야기는 요즘 어느 정도 해소가 된 어려움이긴 한데요. 테블릿 피씨가 등장하기 전에는 파레트에 색을 하나하나 만들어보고 조합해서 작업을 진행했었어요. 어울리는 색이 무엇이 있는지를 연구하는 아날로그 시스템이죠. 하지만 요즈음에는 테블릿피씨가 있어서 보다 편하게 예상하는 색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어요. 작업의 특성상 프린트된 느낌으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컬러의 양을 조절하지 못하면 다시 색을 만드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죠. 또한 어디는 묽고, 어디는 진하게 되면 작품의 결과가 달라지니, 정교하게 작업하며 덧칠하는 일에 시간 소요가 많았죠. 요즈음에는 테블릿피씨로 미리 색을 입혀보고, 시뮬레이션 후에 계산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수월해요.
에디터 몽키 : 저는 작품 안에 색이 한정적이고 볼륨보다 일정한 톤으로 완성하는 방향이 오히려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작업으로 프린트 작업처럼 만든다는 것이 더 복잡하겠네요. 터치나 자국이 남아도 안 되고, 색도 일정해야 하니 말이에요.
E. 발달 장애 친구들이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일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토탈 미술관의 신보슬 큐레이터님과 개인적 친분이 있었어요. 복지관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제가 함께 하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셔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죠. 그렇게 복지관을 2년 정도 나갔던 것 같아요. 복지관에서 평범한 작업실 대표님이신 노세환 작가님과 함께 일했죠. 발달 장애 예비 작가들 중에서 두 명은 매주 수요일마다 평범한 작업실로 데려와서 그 친구들의 관심사를 관찰하고 작업으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고, 매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의 표현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는 등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배우는 건 오히려 제가 더 많아요. 생각의 폭이나 관점도 다르고요. 말하면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 친구들이 인터뷰 주제에 부합되는 순수함을 가진 친구들이 아닌가 싶네요. 그림을 그릴 때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면 정말 그림 그리는 자체를 100% 즐기고 있는 것 같고요. 한 친구는 작년에 개인전을 했었어요. ‘동물과 마주하다’ 라는 주제였죠. (@younghun1995) 정민우 작가도 2023년도 12월에 <미미식탁> 이라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minwoo0712_)
E.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는 지 궁금합니다.
우선 영상 매체를 자주 봐요. 만화나 영화는 특히 자주 보고요. 틈 날 때면 보고 떠오르는 색감이나 모영, 형태를 발견하는 일에 시간을 쏟고요. 제가 겪었던 것들이나 인상적인 것에 대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거나 기억하여 작품으로 가져오는 경우도 있고요.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영화를 특히 좋아했는데 그로부터 반영되는 부분도 많아요. 한번은 ‘다크 나이트’라는 영화의 조커라는 캐릭터가 인상 깊었어요. 그런 삶은 어떤 삶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저와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호기심으로부터 작업을 이어나가는 게 재미있죠. 또 다른 예로는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로부터도 비슷한 과정으로 결과물을 만들었고요. 그리고 평상시에 불특정 무언가에 대해 구경하고 관찰하는 일을 많이 해요.
E.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상하시는 작품과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의자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제 얼굴을 그리거나 어떠한 상황을 그렸었는데, 처음으로 사물을 그린 작품이에요. 사물을 그리고, 그 사물이 어떠한 시간을 보내왔을까 라는 질문이 흥미롭게 느껴졌죠. 그러면서 ‘다른 퍼포먼스나 무언가를 연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의자를 닦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고요. 또한 ‘환경이나 저의 개입으로 또 다르게 변화를 겪지 않을까’ 라는 호기심과 흥미도 컸어요. 작업 프로세싱 자체가 한 길로만 가던 저에게 다른 길을 가본 것 같은 신선함도 있고, 작업으로부터의 환기를 느끼는 것 같아서 기억에 오래 남아요. 이 과정에서 새롭게 구상하는 아이디어도 생기고 폭에 갇힐 염려도 줄일 수 있고요.
E. 작품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색감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구상하는 이미지들을 라인으로 들어온 후에 색을 넣는 순서로 작업해요. 늘 과하지 않은데 화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저의 MBTI가 ENFP라서 외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개인적 성향도 색에 반영을 주는 것 같아요. 1차적으로는 밝은 느낌을 뿜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도를 갖죠. 유독 그런 밝은 느낌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본능적 선택이자 개인적 충동의 솔직함인 것 같아요. ‘밝은 작품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자세히 작품을 보면 전혀 반대의 감정이 드러날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수도 있죠.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듯 색을 통해 저에 대한 아이덴티티와 이야기, 암시나 플롯 등이 있어요. 두 번째로는 ‘눈(Eyes)’이에요. 제 작업에서 보통 눈이 크게 부각되어 나오는데, ‘눈(Eyes)’은 다른 촉각이나 미각, 후각에 비해 사람에게 가장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감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눈을 통해서 바라보는 사회 모습이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책임감처럼 매 작업마다 눈을 가장 먼저 그리는 순서를 갖죠. 눈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보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바라보았을 때 그 사람이나 시간을 나타내기도 해요.
E. 계획 중인 전시나 구상 중인 작품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이번년도(2023년)를 목표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개인전을 위해 여러 곳에 미팅도 다니고 작업도 준비 중이죠. 제 작품 중에 가장 큰 작품이 150호에요. 얼마 전에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작가의 작업을 보았는데 대형 작업으로부터 다가오는 에너지가 다르더라고요. 이번 작업에서는 대형작업을 도전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뭐 사실 올해 안에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작업들은 많아요. 그 중 하나로는 ‘퇴근 시리즈전’이에요. 작업 방식 중에 하나로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보여 지는 광경들을 찍고 있는데, 일정 시간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한국 내에서 움직여지는 퇴근의 얼굴들에서 인상적으로 느껴지거나 발견된 무언가를 사진으로 찍은 뒤에 색상이나 이미지를 삽입하여 완성하는 작업이죠. 그리고 또 다른 방향은 초상화 시리즈도 있고, 이모티콘 시리즈도 있어요. 구상하는 것들은 많죠.
* 무라카미 다카시(むらかみたかし) : 카이카이 키키 대표이사이자 미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일본화과 졸업 이후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거쳐 1993년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도쿄예술대학교 일본화과가 배출한 1호 박사이기도 하다. 일본 오타쿠 코드로 재조합하여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며, 그의 작품세계는 오타쿠 문화와 예술의 경계에 있다. 2021년에는 NFT 작업으로 카이카이키키 웃는 꽃이라는 작품을 NFT화 한 ‘무라카미.꽃’ 과 나이키 NFT로 알려진 NFT 기업 RTFKT와의 협업으로 만든 ‘클론X’가 그의 작품이다. 그 외로는 경매가 약 5천800만엔에 낙찰된 피규어 작품, 그만의 팝아트 작업,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등다양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자료 출처_ 나무위키)
E.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형 작품의 경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100호를 기준으로 하자면 빠르면 2주에서 보름 정도 걸리죠. 물론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하기 때문에 속도가 오래 걸리는 것도 있어요. 전시가 잡히면 밤샘작업은 기본이죠. 흑백 작업의 경우는 비교적 금방 해요.
E. 영향력 있는 인물이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재 상황에서 저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자면 노세환(평범한 작업실) 작가님과 신보슬(토탈 미술관) 큐레이터님이네요. 계속 소통하고 만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중이거든요.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작업에 대한 교류나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요. 그리고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죠. 생각하는 것들, 작업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해요. 작가 내부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시간도 물론 필요하지만 외부적으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생각도 이어져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이에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감상했었는데, 십자가 책형을 위한 습작 3점, 3면화를 좋아해요. 직업 특성상, 보여지는 재료의 특성이나 터치감도 보게 되요. 표면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설치는 어찌 되어 있는지, 그로 인해 뿜어져 나오는 깊이감은 무엇인지도 함께 관찰하죠. 그 작품을 30분 정도 가만히 본 것 같네요. 보는 내내 감탄을 했죠. 왠지 모르게 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죠. 어떤 생각을 하면 저렇게 표현이 될 수 있나 싶기도 하고요.
또 하나의 작품은 ‘요시토모 나라’라는 작가의 작품인데요. 그 분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제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생겨요.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장난스럽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서글픔도 느껴져요. 얼굴에서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도 있고요. 그 분의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도 보았는데 큰 감명을 받았어요. 학부 시절에는 그 분의 작업물을 따라 그리는 시도도 많이 했죠. 간단하게 그린 것 같지만 실은 상당한 정성이 있어야 그릴 수 있는 작품이에요.
*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 20세기 영국 화가로 추상 표현주의와 현대 미술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잔인하고 퇴폐적인 이미지, 심리적인 내면의 탐구, 인간의 존재의식 등을 다루며, 독특한 스타일과 상징적인 모티브로 알려져 있다. 1909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가구 디자인과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화가로 전향하여 창작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고독과 불안, 죽음과 인간의 고통 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강렬한 색채와 침투적인 묘사 기법을 특징으로 하며, 흐릿하고 왜곡된 인물들, 동물, 신체 부위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종종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탐구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1992년 사망했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콜렉터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E. 앞으로의 꿈이나 목표가 무엇일까요?
여건이 된다면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어요. 주변에 작업을 하다가 멈추게 되시는 분들이 많아요. 끝까지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하는데, 상황은 제 뜻대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작업을 이어가는 한, 제 생각을 좀 더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어요. 이 일이 저에겐 무척 재미있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작가도 연예인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자신만의 생각이나 작업을 보여주는 건데 한번 이슈가 되었다가 사라져도 안 되고,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운 부분이죠. 오랜 시간동안 재미있게 작업을 지속하고 싶어요. 공부도 더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도 맺어나가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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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인터뷰는 BUTTON UP MAGAZINE 의 첫번째 주제인 '순수함' 에 대한 인터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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